단상94. 성 브루노 축일을 맞이하여
오늘 10월 6일은 1084년 성 브루노에 의해 창설된 카르투시오회 수도승들의 잔칫날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수도회 삶의 양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의 주보성인이신 로무알도 성인이 11세기 초에 창설한 카말돌리회와 비슷한 삶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두 수도회는 수도승생활 역사 안에서 개혁의 시기였던 11세기 당시 은수생활로의 개혁운동의 주류를 형성했던 수도회입니다.
이 두 수도회가 추구했던 삶의 양식은 공동생활과 은수생활의 조화였습니다. 그러나 그 무게 중심은 물론 은수생활에 있었습니다. 수도원 안에서 공동생활을 통해 더욱 더 깊은 고독과 침묵 속에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은수생활로 나아가는 것을 지향하였습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동방 수도승생활의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수도회의 삶의 양식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카말돌리회의 경우 수도원과 은수처가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에서는 주로 양성이나 환자나 노인들 간호가 이루어졌고 은수생활에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머물었고 은수생활에 준비되면 은수처로 가서 더 깊은 삶으로 들어갑니다. 반면 카르투시오회의 경우는 큰 수도원 안에 담장을 끼고 개인 은수처들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일컬어 ‘함께 사는 은수자들’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이는 4세기 이집트 켈리아 은수자들이 무리를 지어 생활했던 은수자 부락과 비슷한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카르투시오회는 가톨릭 수도회 가운데 가장 엄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1세기 당시 자신들의 삶의 이상과 정신, 그리고 규율을 담은 회헌을 거의 오늘날까지 큰 변화 없이 지켜오고 있는 수도회입니다. 그래서 19세기 어떤 교황께서는 카르투시오회를 일컬어 이런 명언을 남기셨습니다. “카르투시오회는 한 번도 개혁되지 않았다. 한 번도 쇠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Carthusia numquam reformata, quia numquam deformata) 후에 이 문구는 카르투시오회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유명한 문구가 되었습니다.
이 수도회는 현재 남녀 모두 한국에 진출하여, 남자는 경북 상주 모동에, 여자는 충북 보은에 정착하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한 이탈로 깊은 고독과 침묵 속에서 하느님만을 찾고자 하는 이런 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활동으로 치우쳐 온 한국 교회와 수도회에 영적 풍요로움을 더 해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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