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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88. 특별한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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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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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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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10

  2010년 7월 말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상주 카르투시오회 수녀원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수녀님들은 상주 모동의 남자 카르투시오회 수도원 입구 한쪽 귀퉁이에 임시거처를 마련하여 생활하고 계셨습니다. 2003년에 한국에 진출하여 건축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5년 이상 마음 고생을 하시다 보은에 있는 수녀원 부지에 새로 건축된 수녀원으로 이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객실에서 혼자 점심식사를 한 후 원장 수녀님과 다른 수녀님 한 분, 그리고 카르투시오회 신부님 한 분과 함께 보은으로 향했습니다. 국도를 따라 한참을 가다가 수녀원으로 올라가는 마을 입구의 좁은 길을 지나 본격적으로 산길을 따라 위로 계속 올라갔습니다. 올라오니 시야가 탁 트였습니다. 아래쪽에선 수녀원 건물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수녀원에서는 전망이 확 트였습니다. 마치 깊은 산중에 사바 세계를 향해 자리 잡은 절과도 같았습니다. 이곳은 겨울이 되어 눈이라도 오면 오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고립무원의 처지가 될 만큼 오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분들은 오히려 하느님을 위해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 완전히 감추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오지에 자리 잡게 되어 너무 행복해 했습니다. 하느님 안에 철저히 감추어져 오로지 그분 발치에 머물며 마리아의 향유병이 되기만을 바랍니다. 이것이 소위 카르투시오회의 소명이고, 그들의 존재 이유입니다. 세상의 논리나 눈으로 보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대한 소문내고 밖으로 드러내려 하는 대부분의 사람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차 안에서 원장 수녀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제가 약간 외람된 질문을 던졌습니다. “수녀님, 언제부터 이 생활을 하셨는지요?” 그러자 수녀님은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말했습니다. “글쎄,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한 번도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적어도 30년은 훨씬 넘었겠지요?”라고 물으니, “예, 아마도 그럴 겁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일은 제게 여러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얼마나 하느님만을 향해서 달려왔기에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겨를도 없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생각과 회상을 하며 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수녀님의 경우는 하느님 안에 머무는 데 온갖 관심과 에너지를 집중했기에 그런 것은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분들에게는 또 거울이 필요가 없습니다. 카르투시오회 수도자들은 거울이 필요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면대에 일부러 거울을 두지 않는데, 그 이유인즉슨 성당에 가는데 무슨 거울이 필요하냐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외적 치장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의 준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이분들과 함께한 시간은 제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분들의 하느님을 향한 열정, 하느님 안에서 얻게 된 단순성과 순수함, 그리고 가난함 자체가 제게는 큰 힘이 되고 기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분들의 현존 자체는 우리 한국교회에도 하느님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르투시오회가 한국 땅에 뿌리를 내려 잘 정착하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은 왠지 가볍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옛 카르투시오회 수도원(Certosa)과 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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