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78. 영원한 불효자
저희 어머님은 이미 22년 전에, 아버님은 15년 전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어머님의 임종 소식을 전해 들었던 2004년 5월 10일(월)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 오전에 회의가 있었습니다. 회의 중 문간에서 아버님 전화가 왔다고 알려왔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연락을 드리겠다고 전해달라 하며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냐고 하자 어머님이 운명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저의 처신이 너무도 후회되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님은 오랜 지병으로 고생을 하셨고,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는 거동도 못 하시고 꼬박 침대에만 누워 말 못 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가끔 집을 방문해도 어머님의 고통 앞에서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는 자신이 무력할 뿐이었습니다. 어머님의 모습을 보고서 집을 떠날 때는 마음이 너무도 아팠고 발길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곤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집을 방문하는 횟수를 줄이고 기도로 대신하기로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의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해 5월 초 교육을 위해 서울 장충동 분원에 며칠 묵게 되었는데, 이때 바로 지척에 있는 본가를 방문하여 어머님을 뵙고 갈까말까 오래 망설이다가 결국 육정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매정하게 끊고 왜관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다 며칠 후 어머님의 운명 소식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머님의 마지막 모습을 뵌 것이 그해 2월이었으니 제 가슴은 더더욱 미어지듯 아팠습니다.
어머님을 보내드리고서 굳게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기회 되는대로 홀로 되신 아버님을 방문하기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 다짐도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2011년 10월 16일(주일) 서울 베네딕도 수녀원 연중피정 지도(10/17-10/25) 겸 아버님을 뵙고자 광주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문자로 아버님의 선종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녀원에 양해를 구하고 곧바로 영안실로 달려가 이미 운명하신 아버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10월 18일(화) 장례를 치루고, 다음날(10/19) 수녀원으로 가서 연중피정을 지도했습니다.
이로서 저는 부모님의 운명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 영원한 불효자가 되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던 일이 많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기워 갚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분들께 용서를 청하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합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 사랑을 잘 드러내 줍니다. 그 사랑에 감사드리고 보답하는 길은 바로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응답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저와 같은 불효자의 전철을 밟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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