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68. 랑데베넥 수도원
1999년 로마에서 공부할 때였습니다. 그해 여름 방학을 프랑스에 있는 랑데베넥Landévennec이라는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한 달간 지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당시 25명으로 구성된 공동체였습니다. 이 수도원에서 보냈던 시간이 제게는 선물 자체였습니다. 그만큼 이후 제 수도생활에 밑거름이 되었던 아름답고 좋은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제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분은 당시 공동체의 장상이었던 루이 아빠스님이었습니다. 그분의 검소하고 소박한 모습과 모범적인 생활은 제게 신선한 충격 자체였습니다. 장상이었지만 전혀 권위적인 모습이라든지 엄격하고 요란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조용하고 온화하면서도 위엄 있고 소박하고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공동체 안에 깊이 현존하는 분이었습니다. 아빠스의 관도 쓰지 않고 나무로 된 소박한 지팡이와 평범한 반지와 목 십자가가 전부였습니다. 겉으로 봐선 형제들과 잘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공동체가 아빠스님을 중심으로 굳게 결속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선 그 이유가 궁금했었습니다.
어느 날 설거지를 마치고 세기실 게시판을 보다가 아주 낯익은 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게시판에는 요일별 설거지 봉사자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거기에 ‘루이’라는 이름이 두 차례 적혀 있었습니다. 의아해서 제 친구 미셸 수사에게 혹시 아빠스님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빠스님은 형제들이 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하셔.” 그때까지 한 공동체의 장상이 그렇게 솔선수범을 보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저로서는 이 말에 매우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형제들이 작업을 나가고 들어올 때 옷을 갈아입고 작업 도구를 두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당연히 흙과 먼지 등으로 더럽혀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작업을 끝내고 나가려는데 수사님 한 분이 멀찍이서 청색 가운을 입고 이 공간을 청소하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순간 저는 속으로 꿍얼거렸습니다. “아니, 어디나 꼭 저런 분이 있다니까 참, 남들 일할 때는 가만있다가 좀 쉬려고 하면 저렇게 혼자 열심인 척하여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니.” 그런데 가만히 보니 많이 낯익은 얼굴이었습니다. 바로 아빠스님이었습니다. 저는 순간 깜짝 놀라고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더 놀랐던 것은 수련자들은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이 마치 늘 있는 평범한 일처럼 여기는 모습을 보고서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련자들에게 “아빠스님도 청소하시냐?”고 물었더니 “매주 토요일 오후마다 형제들이 쉬고 아무도 없을 때 이곳을 청소하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고서 저는 이 공동체가 그렇게 결속되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빠스님의 이런 모범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삶의 모범으로 바로 공동체 일치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공동체는 제가 방문했던 공동체들 중 가장 아름다운 추억과 교훈을 선사했습니다. 랑데베넥 수도원, 그리고 루이 아빠스님은 제 기억 안에 늘 돌아가고픈 고향처럼 깊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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