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62. 위대한 침묵
2010년 초 상주 카르투시오회 남녀 수도승들을 방문했었습니다(당시 수녀님들은 충북 보은에 수녀원 건축이 끝날 때까지 상주 남자 카르투시오회 수도원 정문 밖 수도원 영토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여 건축이 끝날 때까지 2년간 생활하고 계셨습니다). 2009년 11월 말 미국에서 귀국한 후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분들의 삶의 모습은 2006년 “위대한 침묵”(Great Silence)이란 DVD를 통해 최초로 세상에 알려진 바 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이 필름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3시간 동안 거의 말없이 침묵으로 이어지지만 현대인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었습니다. 후에 한국에서도 일부 영화관에서 상영되어 의외의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세상에서 물러나 철저한 고독과 침묵 중에 하느님만을 향한 이분들의 삶은 그 자체로 현대인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소위 말없이 크고 강력한 말을 하는 셈입니다. 이분들은 세상에서 완전히 물러나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세상 한가운데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분들의 고행과 기도의 삶 자체는 자신들의 구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가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분들을 방문했을 때 대화 중에 “위대한 침묵”이라는 그 필름에 대한 말이 나왔습니다. 제가 한국 사회에서 그 필름이 일으키고 있는 당시의 반향을 이야기했더니 당사자들은 전혀 의외의 반응들을 보였습니다. 자기들도 그 DVD를 얻게 되어 잠시 보다가 그만 포기해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삶은 하느님 안에 철저히 감추어진 삶인데 이렇게 세상에 공개되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필름을 보기도 싫을뿐더러 생각하기조차 싫다고들 했습니다. 그분들이 어떻게 느끼든 이 필름이 현대인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성소 계발이다 뭐다 해서 수도회마다 앞다투어 매스컴 홍보를 하려는 현상과 비교해 볼 때 너무 큰 차이가 드러납니다. 물론 각 수도회의 카리스마와 삶의 양식은 다르지만, 수적 증가와 양적 발전을 위한 무분별한 시도와 생존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합니다.
수도생활은 세상 안에 있으면서도 세상에서 물러나 있고, 그러면서도 세상 한복판에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수도생활의 일차적 역할은 복음적인 삶의 증거입니다. 이러한 삶의 증거 없이 세상 안에 정신 없이 파묻혀 행하는 모든 일은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하며 참된 결실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온갖 허영과 거품을 걷어낸 작고 소박한 삶의 모습, 하느님 안에 감추어진 겸손한 삶의 모습은 우리 시대 수도생활이 보여주어야 할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직도 카르투시오회 수도승들의 해맑은 미소가 제 눈가에 어른거립니다. 수녀님들은 오랜 고생 끝에 현재 충북 보은에 터를 잡고 생활하고 계십니다. 이분들이 한국 땅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이분들의 현존 자체가 한국교회에 큰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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