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41. 어머님들에게 감사하며
저는 어머님들의 숨은 노고를 전혀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저의 어머님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시는 모습을 지척에서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안 살림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밖에서 수고하시는 아버님들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할 수 있는 헌신과 노고가 필요할 것입니다. 제가 주부들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 것은 그분들이 하는 일부를 몸소 경험하고서부터입니다.
제가 한 때 몇 년간 생활했던 미국 사막수도원은 남자들끼리 사는 공동체입니다. 대 가족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부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해보지 않았던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청소, 주방, 쇼핑, 빨래, 정원일, 설거지 등 소위 가사 일에 적지 않은 시간이 투자되는 것을 보고서 가사 일이 절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사제들은 전례 봉사까지 해야 하니 외국인으로서는 그리 만만한 삶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주일미사와 강론으로 바짝 긴장된 하루를 보내고 월요일에는 생전 처음으로 보조도 아닌 정식 주방장으로 채용되어 30여 명분의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도 기가 막혀 어찌해야 좋을지 잠시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했지만 노련한 형제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하루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에는 또 제가 제일 싫어하는 시내 외출, 그것도 장 보러 가는 소임이 배당되어 온종일 장을 보고 오후 늦게 방에 들어오니 몹시 피곤했습니다. 또 그 다음 날에는 빨래방 소임을 하게 되어 오전 내내 빨래와 씨름을 했습니다.
이렇게 나흘을 연속으로 돌다 보니 피로가 절로 쌓였습니다. 저의 못난 성격대로 한다면 벌써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 주일 강론 때 그만 실수(?)를 한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론 때 봉사와 나눔, 모범을 강조했으니 불평하는 기색도 못 내고 말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강론 주제를 진작 바꾸었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피곤은 했지만 기쁘게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사실 제가 한 것들은 주부들에 비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분들 앞에선 명함도 못 내밀 것입니다. 물론 저희에게는 남편과 자녀 양육 대신에 기도를 중심으로 짜인 빡빡한 일정과 결코 녹록지 않은 공동생활이란 것이 있지만 어머님들의 보이지 않은 헌신과 노고에는 그저 머리가 숙어지고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듭니다. 지금의 제가 있는 것도 결국 가정이나 사회에서 이런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남을 위한 희생과 봉사는 참으로 숭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저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들, 특히 어머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깊은 절을 드립니다.
* 전이수 작가 글 그림
![]()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