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39. 실낙원 가는 길에서
이십 여년 전 특강이 있어 충남 당진에 있는 솔뫼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왜관에서 그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경부선 기차를 타고 천안에서 내려 다시 장항선으로 갈아 타 신례원(처음에 저는 역 이름이 너무 생소해 ‘실낙원’으로 알아들었습니다)이라는 작은 시골 역에서 내려 또 다시 차를 타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날 천안에서 장항선으로 갈아탔는데, 충청도 원주민 할머니 한 분과 동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리에 앉으니 왠지 처음부터 이상한 눈으로 저를 경계하는 눈치였습니다. 침묵 중에 몇 정거장을 가다가 어르신이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갑자기 특유의 충청도 사투리로 제게 물었습니다. “어디까지 가시유?”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신례원까지 가는데요.” 하니 할머니가 “아, 그러시유.” 하고 고개를 끄떡이셨습니다. 그래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으셨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심문(?)이 이어졌습니다. “한국 사람 아니지유?” 그래서 제가 웃으며 “저 한국 사람 맞는데요. 저 서울 출신인데요. 왜, 제가 한국 사람같이 보이지 않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닌디, 말투가 분명 한국 사람 같지 않은디…. 어디에서 왔시유?” 하고 재차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엔 “지, 왜관에서 왔시유.”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선 심문이 끊어졌습니다. 신례원역까지 오면서 저는 속으로 배를 잡고 웃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하기야 제 행색이 예사롭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머리는 까까머리에, 옷은 이상한 개량 한복 비스름한 데다 말투도 여러 지방 말이 섞였으니 그 어르신께서도 도저히 정체파악이 안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외국인 노동자인 줄 아셨던 것 같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강의 때 수녀님들에게 소개하니 모두 뒤집어지셨습니다. 그러더니 그 순간 이후부터는 저를 볼 때 모두가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속으로들 “맞아, 그러고 보니 진짜 한국 사람 맞나?” 하고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표어대로 신원 확인을 다시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신원에 대한 분명한 의식은 중요합니다. 신원의식이 희박하면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놓쳐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처럼 누가 안 알아주면 어쩌지요? 하기야 지금은 머리도 길고 복장도 그때와는 달리 평범한 한국인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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