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32. 뒷북 이야기
살다 보면 주변에 소위 뒷북치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됩니다. ‘뒷북친다’는 말은 ‘뒤늦게 쓸데없이 수선을 떤다.’라는 뜻인데, 감각이 느려 형광등과 같은 사람을 두고도 흔히 사용하는 말입니다. 저도 가끔 뒷북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눈치가 없다거나 형광등류에 속한다고는 믿지 않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2002년 제가 수련원을 맡고서 두 번째 반을 맞이했던 해였습니다. 이 수련반은 첫 번째 반보다는 조용했고 모든 것을 알아서 다 해서 제가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던 비교적 모범적인 반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미는 별로 없었습니다. 강의 시간에 너무 조용해서 분위기를 좀 풀어보려고 오히려 제가 온갖 재주를 다 부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강의 시간마다 좀 웃겨보려고 강의 전에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씩 준비해서 들어가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느 날 제게는 정말 정말 재밌는 이야기 하나를 어디서 찾아 강의 시간에 형제들에게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야기를 시작해서 마칠 때까지 하나 같이 반응은 없고 모두 소처럼 눈만 끔벅끔벅하는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분명 웃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너무 황당하고 무안해서 곧바로 다시 강의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너희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웃기지 않아도 애덕으로라도 웃는 시늉이라도 좀 해야 하는 것 아니야.” 하고 투덜거렸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이 반응이 없던 이유를 그날 공동휴게 때에야 알게 되고서 한바탕 웃은 적이 있습니다. 휴게 때 제가 물었습니다. “오늘 강의 시간에 내가 한 얘기가 재밌지 않았니?” 그러자 일제히 “신부님, 그거 우리 다 알고 있는 건데요. 10년 전 개그예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썰렁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형제들 앞에서 감히(?) 웃긴 얘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뒷북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하기야 제가 귀국한 지 일 년 밖에 안 된 데다가 1988년 수도원 입회 이후 TV와는 담을 쌓고 살아오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 가지고 뒷북쳤다고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거슬러 사는 수행자의 멋일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 시대는 세상 명리에 너무 밝은 똑똑한(?) 수행자를 원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세상 물정에는 어느 정도 어두운, 나사 빠진 듯한 그런 어수룩한, 그렇지만 순수와 열정을 간직한 그런 수행자를 목말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지론입니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이런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기 전에 반드시 유통기한을 살펴보기로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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