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29. 빨래방에서
금요일 오전,
구름 한 점 없는 날입니다.
빨래방에 앉아
세탁기와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창밖으로 하늘을 바라봅니다.
푸르디푸른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가슴이 훤히 뚫리듯 시원합니다.
맑디맑은 하늘은 어느새 스크린이 되어
그 위로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때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쳐다보기도 두렵고 부끄러운 시점이
더 많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만과 허영, 분노와 무례, 완고함과 무절제로 점철된 시간들
모두가 에고의 투영이요 장난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 안에서도 은총이 흐르고 있었음을 느낍니다.
엄청나게 큰 은총이 제 존재와 삶을 휘감고 있었음을.
그래서 늘 감사합니다.
그래도 에고는 여전히 제 안에 꿈틀거립니다.
부단히 에고를 죽이지 않고는
다시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오늘, 빨래와 함께 마음에 낀 녹을 깨끗이 씻고 싶습니다.
푸른 하늘처럼 흠도 티도 없는 맑은 마음이고 싶습니다.
* 이 글은 제가 2007-9년 미국 사막의 그리스도 수도원에서 생활할 때
어느 날 빨래방에서 소임을 하던 중 문득 떠오른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