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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28. 분노와 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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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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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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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34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345년-399년)만큼 분노와 온유에 대해 깊이 통찰하고 가르친 교부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작품 여러 곳에서 분노와 온유에 대한 언급을 보게 됩니다.  그는 말합니다. “분노와 미움은 증오심을 키운다. 동정과 온유는 있는 증오심조차 감소시킨다.”(『프락티코스』 20장) 또 다른 곳에서는 “화를 잘 내고 격노한 수도승보다 온유한 세속인이 더 낫다.”(『수도승을 위한 권고』 34장) “온유한 신부新婦가 성 잘 내고 뻔뻔스러운 동정녀보다 더 낫다.”(『동정녀를 위한 권고』 45장) 


  에바그리우스는 분노를 관상가의 가장 큰 적으로 보았습니다. 분노가 우리 정신을 흩뜨려 순수한 기도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가 순수한 기도를 갈망하고 정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집중하려면 분노를 다스리고 분노가 일으키는 생각을 감시하라고 권고합니다. 분노와 기도는 서로 대척점에 있습니다. 성난 사람은 기도 중에 눈앞에 계속해서 자기를 공격한 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반면 참된 기도자는 하느님과 대화하며 모든 것을 잊습니다.  


  이처럼 분노는 기도를 방해하는, 하느님과 정신의 순수한 대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그래서 에바그리우스는 어떤 악도 분노만큼 정신을 악령으로 변형시키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은 ‘예수기도’처럼 ‘짧고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부르면서 분노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합니다. “원수를 물리치려면 끊임없이 기도하라. 짧고 끊임없는 기도는 유혹받은 사람, 특히 분노의 약령에 사로잡힌 자의 일용할 양식이다.”


  우리가 어떤 악습과 효과적으로 싸우려면 그에 상응하는 덕을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노의 상대 덕은 바로 온유입니다. 에바그리우스는 모든 덕 가운데 온유는 인간을 하느님과 그분의 신비에 다가가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관상가의 탁월한 덕은 ‘분노의 부재’, 곧 ‘온유’입니다. 어떤 덕도 온유만큼 지혜를 낳지 못합니다. 에바그리우스는 온유를 ‘강한 자의 덕’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증언에 의하면, 온유는 모세와 다윗, 그리고 그리스도의 탁월한 모습입니다. 에바그리우스는 참된 ‘관상가’의 모습을 묘사하기 위하여 모세를 인용합니다. 모세는 온유 덕분에 하느님과 피조물에 대한 인식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세례 때 그 형상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완전한 형상은 바로 육화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 상승의 궁극 목표는 단지 천사들과 비슷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와 비슷하게 되는 것은 세례와 더불어 시작됩니다. 세례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잠기고 그리스도로 갈아입습니다. 즉 지혜, 진리, 정의, 그리고 온유로 갈아입습니다. 온유는 다른 모른 것보다도 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특성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우리의 첫 번째 과제는 그리스도를 모방하고 그분의 온유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분노에서 온유로 나아가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닮은 온유한 자가 되지 못할 때 우리는 하느님과 참된 대화와 일치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덕은 좋은 습관이라 합니다. 습관은 하루아침에 들지 않습니다. 지속적인 땀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성실한 노력이 하느님 은총과 만날 때 어느 날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온유한 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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