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7
4. 환대와 나눔의 수단
수도승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동을 했지만, 동시에 남은 것은 필요한 이들과 나누었다. 수도승은 자기 필요를 줄이기 때문에 적은 것으로 생활한다. 그는 노동으로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병자와 고아)을 돕고 환대를 실천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노동을 통해 순례자들과 죄수들, 그리고 굶주린 이들에게 음식을 줄 수 있었다. 요한 카시아누스는 그들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감옥에 갇힌 이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기 위해 충분히 노동을 하는 이집트 수도승들을 일례로 들고 있다.
“이집트 교부들은…자기 양식을 위해 어떤 것도 받기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자기 노동으로 방문하는 형제와 순례자들을 회복시켜 줍니다. 게다가 많은 양의 식량과 다양한 자원을 모아 가뭄과 기근으로 고통받는 리비아 지역과 심지어 비참한 감옥에서 쇠진해가는 이들을 위해 도시로 보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봉헌을 통해 손수 일한 결실을 주님께 참되고 맞갖은 제물로 바친다고 믿습니다.”
바실리우스는 “어떤 목적과 자세로 노동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노동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기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굶주렸을 때 너희는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계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노동을 해야 한다.…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자문하면서 너희를 위하여 걱정하지 말고 옷에 대해 신경 쓰며 너희 육신을 위해 걱정하지도 말라.”
따라서 각자 자기 노동에서 가져야 하는 목적은 궁핍한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지 자기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바실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단지 육체의 고행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웃사랑이 요구하기 때문에 노동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를 매개로 하여 하느님께서 필요로 하는 우리 형제들에게 자족의 수단을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으로 생활하며 자기 노동의 열매로 자선을 행한다. 병자들을 돕기 위해 노동을 했던 성 바오로의 예(사도 20,35)를 인용하면서 카시아누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자본 수입이나 따로 모아둔 돈이나 심지어 다른 사람의 기부와 부로써가 아니라 열심히 일해서 땀 흘려 번 것으로 그들을 위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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