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45. 별난 학술대회3
마침내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저의 시간을 앞에서 다 까먹고 제게는 10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담담히 단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상하게도 제 주특기인 떨림도 동요도 일절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사회자가 간략히 제 소개를 하고 곧이어 제가 마이크를 넘겨받았습니다. 그리고 사회자에게 물었습니다. “몇 분 만에 발표해야 합니까?” 그리니까 사회자가 “30분 동안 하셔도 됩니다.” 하더군요. 순간 “10분도 되는데….” 하고 혼자 웅얼거렸습니다. 그리고 30분 발표를 위해 요약해 간 제 원고를 아예 덮어버렸습니다. 앞에서 모두 읽는 발표를 해서 하도 식상해서 그랬습니다. 그리고선 첫 마디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저희 어머님께서 항상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어디 가서 노래할 때 제일 마지막에 해라. 스타는 항상 마지막에 하는 거란다.’ 저는 오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디 가서 발표할 때 절대 마지막에 하지 않겠다.’”
순간 좌중은 제 말뜻을 알아듣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누구보다도 끝까지 자리를 굳세게 지켜 준 가톨릭 수녀님들이 신나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논문을 원고 없이 횡설수설(?) 요약해서 발표하고 정확히 29분 만에 발표를 마쳤습니다. 발표 후 제 논문에 대해 논평자로 초대된 예수회 신부님이 5분 안에 간략하게 논평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네다섯 분의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주제발표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인사를 하니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그 박수의 의미를. 분명 제시간에 끝내줘서 고맙다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단상을 내려오니 그 공포의 목사님이 대뜸 저에게 다가오셔서 정중하게 인사하며 “신부님, 감사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하며 악수를 청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다음 논평을 해주셨던 신부님에게도 가서 인사를 했습니다. 수녀님들 왈, “신부님, 저희가 얼마나 마음 졸이며 기도했는지 아세요. 목사님이 질문할 줄 알았는데 질문을 안 하셨어요. 아마도 저희 기도발이 먹혔나 봐요.” 하며 수녀님들이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좋아했습니다.
저희 일행이 행사장을 나오자 여러 사람이 인사하며 악수를 청하더군요. 아마도 속으로들 “신부님, 시간 잘 지켜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생각하면서 그랬을 겁니다. 그분들이 제 강의 내용을 어찌 알아들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저는 일약 스타(?)가 되어 바람과 함께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학술대회 참가 후기입니다.
저는 이번 경험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고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다시는 학술모임에 참여하지 않겠다.
둘째, 피치 못해 참여할 경우 첫 번째 순서를 강력히 요청하겠다.
셋째, 자기에게 배당된 시간 초과는 애덕을 거스르는 행위다.
넷째, 강의나 발표 때 절대로 읽지 말고 나도 모르는 말은 절대 하지 말자.
다섯째, 타종교를 어설프게 폄하하지 말자.
여섯째, 제한된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다 전하려는 욕심을 내지 말자.
일곱째, 어떤 자리든 중간에 뜨지 말자. 김샌다.
이런 의미에서 첫 학술대회 참가는 저에게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큰 성과를 얻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교 가문의 수치였는지 아니면 영광이었는지…. 여러분의 평가에 맡깁니다.
그 이후에도 뜻하지 않게 학술대회에 몇 차례 초대되어 참가한 적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제 순서는 늘 첫 번째였고, 저는 엄청 바쁘다는 이유로 발표 후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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