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43. 별난 학술대회1
2006년 5월 13일 전남대학교에서 ‘한국 종교간 대화학회’ 주최로 정기 학술대회가 있었습니다. 이 학회는 지금까지 종교간 대화가 각 종파의 대표나 지도자들이 가끔 모여 사진이나 찍고 끝나곤 했던 이벤트성, 일회성 행사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더욱 지속적, 실제적 대화의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2005년 10월에 전남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학회로 창립되었습니다.
2006년 봄 학술대회 주제는 “영성과 명상의 세계”였습니다. 불교, 이슬람, 원불교, 도교, 가톨릭 이렇게 다섯 종파가 초대되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얼떨결에 엮여서 제가 대표로 나가 주제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모임은 각 종파에서 30분 안에 각자의 주제에 대해 요약 발표한 후 5분간 간략한 논평이 있고, 이어 15분간의 질의응답 시간으로 진행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하루 전날 내려와 광주 까리따스 수녀원에서 신세를 졌습니다. 아는 수녀님들에게 저의 걱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이런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를 하는 것은 난생처음인데, 정말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가톨릭 대표로 나와서 하는 것인데 교회에 누를 끼치게 되지나 않을지 참 걱정입니다.” 그랬더니 수녀님들은 “신부님, 저희가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저희 수련자들을 데리고 함께 가서 응원하겠습니다. 그러니 힘내세요!”
당일 아침 수련장 수녀님과 수련자들, 그리고 아는 수녀님들과 함께 전남대학교로 이동했습니다. 행사장에 들어서니 살레시오 수녀회 수련장 수녀님과 수련자들도 와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야, 이거 오늘 정말 공개적으로 가문에 오점을 남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어찌 알고 이런 모임에 완전 초짜인 저의 발표순서가 제일 마지막에 배정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오전에는 기조발표만 있었는데, 발표자는 요사이 뜬다고 하는 경북의 한 큰 사찰 강원의 강주 스님이었습니다. 스님은 불교의 수행법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대개는 문외한이기에 그 심오한(?) 가르침과 낯선 용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인내지덕으로 경청의 예를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스님의 말투나 자세가 타 종교에 대한 불교의 우월성을 은근히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서서히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배정된 시간을 초과하여 준비한 논문을 한 시간 넘게 줄줄이 읽어가면서 지루하고 식상해졌습니다. 일단 시간을 초과하니 모든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자의 거듭된 당부 끝에 스님은 결국 논문을 끝까지 다 못 읽고 발표가 끝났습니다.
곧바로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허연 수염을 한 어떤 분이 손을 번쩍 들고 질문했습니다. 스님의 타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지적하는 예리한 질문이었습니다. 스님은 답변을 제대로 못 하고 진땀을 흘리며 두루뭉술 피해갔습니다. 이 질문자는 바로 이날 초대되지 않은 개신교의 한 목사님이었습니다. 남의 시간을 엄청 뺏어 먹은 스님은 자기 순서가 끝나자마자 바쁜 일이 있다는 핑계로 급히 자리를 떴습니다.
이렇게 오전 시간이 가고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에 다시 모였습니다. 오후에는 저를 포함해서 네 사람의 주제발표가 있었습니다. 오후 시작 전 진행을 맡던 사회자가 발표자들에게 거듭 당부했습니다. 제발 자기 발표시간을 지켜달라고요. 오전에 시간이 너무 밀려서 진행에 많은 차질을 빚었기 때문입니다. (To be continued)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