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57. 참된 사막
우리가 잘 알듯이 사막은 순례의 땅, 불모의 땅이지만 많은 시련과 고통 속에 하느님을 만나는 곳, 그분 현존을 체험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슬픔과 기쁨, 좌절과 희망, 고통과 영광, 죽음과 부활이 동시에 체험되는 곳입니다. 사막은 바로 파스카 신비를 몸소 살고 몸소 체험하는 그리스도인 실존의 장입니다. 달리 말하면 구체적 삶의 현장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막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파스카 신비를 살고 체험하는 바로 그곳이 사막입니다.
물론 외적 사막이 외적 고요와 침묵을 보장해 주고 세상 근심 걱정에서 우리를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해주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사막 한가운데서도 세속 한복판처럼 살 수 있고 세속 한복판에서도 참된 사막을 찾고 고독과 침묵을 살 수 있습니다. 참된 고독과 침묵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보장해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참된 사막은 내적 사막, 마음의 사막입니다. 이 사막은 바로 우리 일상 안에서, 우리 내면에서 매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장소나 제도 혹은 대상 역시 부차적인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아직 여정 중에 있는 순례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고요한 장소에 있어도, 아무리 훌륭한 제도 속에 있어도, 아무리 뜻을 같이하는 도반과 함께 있어도 스스로 깨어 있지 않으면 내적 깊이 없이 늘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의 내적 자세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느 제도 속에 있든 누구와 더불어 살아가든 자기중심을 잃지 않고 내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미혹 속에 헤맬 것입니다.
그 어디나 우리 인간 내면의 욕망과 거기서 유래하는 움직임은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삶과 존재의 근본을 향하지 않는다면 결국 거짓된 자아의 허상을 좇다가 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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