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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52. 하느님의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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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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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1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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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69

하느님의 동선



가끔 하느님이 움직이시는 궤도를 추적해 봅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움직이는 경로와 다름을 보게 됩니다.

이런 엇박자 때문에 늘 실망과 좌절이 반복되는가 봅니다.

그분이 그리시는 동선動線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납니다.


  첫째, 예측불허라는 점입니다.

  둘째, 자유롭다는 점입니다.

  셋째, 선을 향해 있다는 점입니다.


하느님은 짓궂으신 데가 있습니다. 

자주 우리와 다른 동선을 그리시며 우리 기대와 희망을

무참히 저버리시는 듯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넘어질 만하면 또 다가오시고 

다시 일어나면 또 사라지시니 

참으로 무심한 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밉지 않습니다.

자주 우리와는 다른 동선을 그리시면서도,

종종 우리를 실망과 좌절의 늪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시면서도

결국은 우리를 당신 선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동선은 이처럼 종잡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허성석, 『바닥 친 영성』, 분도출판사 2019, 39-41쪽)


  언젠가 이런 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째서 내 삶은 자주 내 의지와 다르게 전개되어 가는 것인가?’ 제 삶이 제가 생각하던 이상과 제가 뜻하던 바 하고는 전혀 다른 동선을 그려왔기 때문입니다. 1994년 9월 부제서품을 받고서부터 지금까지 제가 걸어왔던 길은 저의 예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습니다. 부제서품 후 1년 간의 지청원장 보조, 사제서품 후 서무실(현 비서실) 책임과 유기서원장으로서의 2년 3개월, 3년간의 로마 유학, 5년 4개월 간의 수련장 소임, 2년 9개월 간의 미국 사막수도원 체험, 화순수도원 분원장으로 3년 7개월, 분도출판사에서의 3년 7개월, 5년 넘는 기간 동안 왜관 본원장으로 봉사, 거의 2년 간 제주에서 자유로운 독거 생활, 그리고 또 다시 1년 간의 수련장, 끝으로 전혀 예기치도 못했던 왜관본당 주임신부로 발령... 


  이 가운데 미국 사막수도원 체험을 빼고는 이 모든 동선은 분명 제가 생각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지만 순종으로 받아들였던 동선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이 모든 길이 하느님이 저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기 위한 이끄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동선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동선은 우리를 결국 선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위의 글은 바로 이런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나와 다른 동선을 그리시는 하느님의 동선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다 하느님의 섭리와 이끄심이 있다는 확신과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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