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49. 땅콩의 추억1
* 오늘내일 나누어 싣는 글은 허성석, 『바닥친 영성』, 분도출판사 2019, 133-118쪽의 내용입니다.
대한민국 남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는 것이 군대 생활일 것입니다. 제가 군대 생활을 하던 때는 1983년부터 1985년까지인데, 이 긴 기간 동안 있었던 여러 일화 중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잊지 못할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1983년 6월 18일 논산 훈련소에 입소해서 4주간의 장정(당시 훈련병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정식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중간 신분이지요.) 생활을 마치고 빛나는 황금색 이등병 계급장을 달았습니다. 논산에서는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이등병 계급장을 달면 그야말로 훈련소 장정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고참(첫째)이 되는 것이지요. 뿌듯한 마음으로 자대 배치를 기다리다 8월 3일 영천 3사관학교로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전방으로 갈 줄 알았는데, 후방도 최후방에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자대에 가니 기라성같은 고참들 천지라 다시 말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숨을 죽이며 눈치 보는 법을 한창 배우고 있던 무렵 부모님과 지금은 수녀님이 되신 둘째 누님이 첫 면회를 오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반가움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비상이 걸려서 단독군장(평상시 군복이 아닌 전투복장, 즉 탄띠와 수통, 철모, 소총 등을 소지한 상태)을 하고 면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준비해 오신 맛 나는 음식을 입에 넣을 수 있는만큼 꾸역꾸역 넣으며 대화를 나누다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께서 철부지 자식에 대한 애련한 마음으로 무엇을 많이 준비해 오신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전우들과 함께 먹으라고 그 먼 곳에서 가져오셨습니다. 저는 원래 무엇을 들고 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데다 수줍음이 많아 그것을 가지고 가서 내무반에 풀어놓기도 쑥스러워서 그냥 가져가시라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마음이 어디 그렇습니까. 그게 부끄러우면 동기들하고만 가서 먹으라며 제가 차고 있던 수통에다가 마른 땅콩이랑 옥수수 안주를 꾸역꾸역 다 챙겨 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동기들하고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그대로 수통에 받아 들고 흐믓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사람 일이 꼬이려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듯이 바로 그날 밤 사달이 났습니다. 땅콩이 가득 든 수통을 내무반 관물대에 잘 진열해 놓았는데 하필 그날 저녁 점호시간에 선임하사가 수통검사를 할 게 뭡니까. 수통검사는 수통 안에 물기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인데, 평상시에는 물기를 제거한 상태로 보관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두 내무반 침상 끝에 수통 뚜껑을 열어 거꾸로 놓아야 합니다. 저는 순간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수통을 거꾸로 놓으면 안에 있는 땅콩이 발각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땅콩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조심 수통을 거꾸로 놓는 데까지는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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