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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84. 은수처에서 온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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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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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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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34

   2010년 화순수도원 시절, 어느 날 카르투시오회 은수처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제가 아는 수녀님에게서 온 편지였습니다. 그분들은 수도원 건축문제로 인해 오랫동안 많은 고생을 해오다 건축이 거의 완성되어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 수녀님은 새로 건축된 수도원을 보고서 원장 수녀님 이하 다른 수녀님들이 보인 색다른(?) 반응을 제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본인들이 생각하던 검소하고 단순한 수도원 건물과는 달리 너무 거창하고 화려하게(?) 지어진 것에 대해 너무 큰 당혹스러움과 슬픔을 표현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어떻게 지어진 것인지는 제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그분들이 보시기에는 너무 호화스럽다고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원장 수녀님은 거의 울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은 원장 수녀님이 다른 수녀님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너무 신선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말씀이기에 함께 나눕니다.  


  “수녀님들, 우리는 이 집에서 살기를 오랫동안 열망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집을 주님의 아버지다운 손에서 선물처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집은 우리의 것이 아니니 우리는 항상 이 집을 주님의 집처럼 바라봅시다.

  물론 이 집을 짓는 비용으로 많은 가난한 이들을 먹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카르투시오회가 우리를 신뢰하고 이 집을 우리가 사용하도록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수도회는 우리 삶 전체가 예수님의 발에 부었던 마리아의 향수병과 같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 삶의 질이 신앙 안에서 완전히 우리를 바칠 목표에 상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과 가난한 이들 앞에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1084년 같은 시기에 성 브루노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오늘 우리가 사는 삶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 타오르는 가슴으로 샤르트르즈 오지로 들어갔습니다(하지만 그들의 삶은 훨씬 더 엄격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눈은 항상 9세기 전부터 지속하여 온 이 카르투시안 삶의 이상으로 향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것을 바꾸거나 우리의 작은 개인적 소망으로 축소하려 하지 않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 이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철저한 봉쇄 속에서 기도와 관상에 전념하는 소명이지만 가난한 이들과의 깊은 연대가 묻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가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연대일 것입니다. 또 자신들의 소명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늘 이상을 향하려는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수도자는 많지만 이런 투철한 소명의식과 초기 이상을 지켜가려는 확고한 의지와 노력은 참으로 귀하게 느껴집니다. 카르투시오회 삶의 양식과 소명은 우리 교회에 큰 힘이자 보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편지를 접한 그 날처럼 저 자신이 참 작게 느껴진 적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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