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83. 야반도주
선가仙家에는 이런 우스갯말이 있습니다. “좋은 수좌 되려면 야반도주에다 줄행랑을 잘 쳐야 한다.” 즉, 소임을 뿌리치고 참선하기 좋은 도량으로 도망을 잘해야 공부를 마칠 수 있다(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산 범어사 내원암에서 성철 스님이 도망쳐 간 곳은 통도사의 백련사였습니다. 그러나 성철 스님은 그곳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속가의 아내가 갓난아기(후에 출가한 성철의 딸 불필 스님)를 데리고 그곳까지 찾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철 스님은 다시 운부암 선방으로 야반도주를 했다고 합니다.
성철 스님의 이 야반도주 일화는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있습니다. 진리를 위해, 깨달음을 위해 소위 권력과 출세처럼 보일 수 있는 행정적 중책을 오히려 수행자에게 장해물로 여기고 심지어 속가의 인연마저 매몰차게 끊어버리는 수행자의 진지한 태도를 엿보게 합니다. 자기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일차적인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상 자기 수행과 깨달음이 선행되지 않거나 적어도 병행되지 않는 선교나 나눔은 힘이 없고 공허하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소위 하느님에 대한 체험 없이 하느님에 대해 논하는 자나 복음의 핵심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자가 복음을 선포한다면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습니까!
야반도주, 그것은 중요한 것, 본질적인 것, 선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행을 한 교부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4세기 이집트 사막교부 중 한 분으로 파프누티우스 교부였습니다. 한 대수도원의 존경받는 사제였지만 겸손과 순종에 대한 갈망 때문에 수차례나 몰래 수도원을 떠나 낯선 곳에서 지원자로 새롭게 시작했던 분이었습니다. 이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일치였고 그것에 방해되는 것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늘 야반도주의 정신과 자세로 살아간다면 항상 핵심과 본질을 놓치지 않고 우리가 들어선 이 여정에 조금씩 전진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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