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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65. 껍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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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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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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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65

  이 글은 2010년 1월 화순수도원 분원장으로 부임했을 당시 수도원 정문 간판이 제일 눈에 거슬렸었고 그 간판 교체를 결심하고서 ‘껍데기’란 주제로 썼던 글입니다. 


  ‘껍데기’란 어떤 것을 싸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껍데기는 나름의 역할이 있습니다. 안의 내용물을 보호해주고 유지해 줄 뿐만 아니라 종종 더 빛나게 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멋지고 화려한 껍데기라 하더라도 그것은 껍데기일 뿐입니다. 조연일 뿐이지 결코 주연이 될 수 없습니다. 


  일상에서 주객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껍데기가 내용물보다 더 윗자리를 차지하곤 합니다. 삶의 경험을 통해 배운 한 가지는, 흔히 내용물이 부실할 때 껍데기가 요란스러워진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겉모양이나 포장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겉은 화려한데 속은 빈 강정과도 같은 물건이나 사람을 보게 됩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우리는 흔히 ‘속 빈 강정’ 혹은 ‘빈껍데기’라고 말합니다. 


  옷이나 치장, 학벌이나 지위 혹은 재산으로 그 사람의 가치나 품격이 평가되는 요즈음 인격과 삶으로 내용물을 알차게 다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껍데기로 승부 거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천박한 인격과 얄팍한 삶이라는 부실한 내용물에 온갖 화려하고 요란스러운 껍데기로 자신을 치장하는 시대를 끝내야 하리라 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장소나 건물이 수도원을 만들지 않습니다. 또 수도원 간판이 사람들을 끄는 것도 아닙니다. 단순하고 검소한 삶, 겸손과 단순성, 기도와 노동에 충실한 삶, 깊이 있는 인격과 수준 높은 영성이 참된 수도승과 전정한 수도공동체를 만듭니다. 이런 수도승과 수도공동체가 내뿜는 향기가 사람들을 오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과 확신에서 저희는 지금 수도원 간판을 교체하려 추진하고 있습니다. 10m가 족히 넘어 보이는 현재의 거대한 간판은 사실 저희가 세운 것이 아니라 예전 주인이 식당 간판으로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철거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굳이 돈을 드리지 말자 하여 기존 간판에 이름만 바꾸어 3년 동안 사용해 온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 알기론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수도원 간판으로 입지를 굳혀 온 것으로 압니다. 


  이제 작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간판은 지금보다 훨씬 더 겸손해지려 합니다. 물론 현재의 간판이 호객행위(?)에는 안성맞춤일는지 모르지만, 지금보다 더 손님이 줄어든다 해도 전혀 개의치 않으렵니다. 누가 간판 보고 수도원에 오는 것은 전혀 바라지 않습니다. 수도원을 상징하는 간판은 검소함과 소박함이 묻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수도원은 식당도 유원지도 아닌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의 수행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거창하고 요란스러운 껍데기보다는 검소하고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삶이라는 알찬 내용물을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소위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 더 치중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성원을 바랍니다.  


* 간판 교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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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판 교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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