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들이 2015년 5월 시복식을 앞두고 산 살바도르 광장 빌딩 외벽에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초대형 걸개그림을 설치하고 있다.

로메로 대주교는 자신의 말대로 엘살바도르 국민들 마음 안에서 부활했다. 【CNS 자료 사진】




민중 안에서 부활한 성 오스카 로메로

1980년 3월 24일 미사 도중 피살된 로메로 대주교는 이미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마음 안에서 성인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의 반독재 투쟁은 정치적 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는 일부의 의견 때문에 시복시성 절차가 지연됐을 뿐이다.

로메로가 처음부터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가 1977년 산 살바도르대교구장에 임명되자 군부와 보수층에서는 무난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농민운동을 하는 친구 루틸리오 그란데(예수회) 신부가 군부에 참혹하게 살해되자 정권의 폭력에 맞서기 시작했다. 그는 친구 장례 미사에서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말씀으로 벗의 죽음을 기렸다. 그리고 친구의 길을 따라 걸었다.

그는 장례 미사 다음 주일, 교구 내 모든 성당의 미사를 취소하고 주교좌 대성당에서만 미사를 봉헌했다. 신자들이 군사 정권의 폭력과 인권 탄압에 대한 고발에 귀 기울이게 하려고 내린 결정이었다. 또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 안으로 들어가 복음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 무렵 일기장에 “권력자와 부유한 사람들, 그리고 빈곤한 사람과 사회적 취약자 중에 신부는 어느 편에 서야 하나. 나는 의문이 없다. 그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적었다.

당시 정권은 ‘공산주의와의 전쟁’이라는 미명 하에 가난한 이들 편에 선 사제와 수도자들도 마구잡이로 체포, 고문했다. 정부는 신변 안전 보장을 운운하며 그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했다. 하지만 “양 떼가 안전하지 못한데, 목자가 무슨 안전을 바라겠느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정부가 강론을 중계하는 라디오 방송국을 폐쇄하려고 하자 “하느님이 가지신 최고의 마이크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가 가지신 최고의 마이크는 교회이다. 여러분이 교회다”라며 국민들에게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라고 호소했다.

그러는 사이에 살해 위협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을 예상했다. 암살당하기 며칠 전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부활하지 않는 영원한 죽음을 믿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나를 죽이면, 엘살바도르 국민들 안에서 부활할 것이다.”

?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