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루카17,5-10)
그때에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반면에 일년생 채소나 뿌리채소는 씨를 심어도 아주 탐스럽게 그 열매가 그대로 열립니다. 그런데 이런 열매가 좋지 않거나 열매가 열리지 않는 나무는 그 생활력에 있어서는 다른 나무가 부러워할 정도로 잘 삽니다. 항균이나 병충해에 견디는 힘이나 뿌리를 넓고 깊게 뻗는 것은 좋은 과일나무보다도 훨씬 강합니다. 생명력은 정말 강해서 잘 죽지도 않습니다. 열매가 좋은 과일나무에 비해서 훨씬 나무도 크고, 질기고, 가뭄이나 바람에도 강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본래의 씨와 같이 크고 맛있는 과일이 열리지 않는 것을 흔히들 ‘개\\’자나 ‘돌\\’자를 붙입니다. 개 복숭아, 개살구, 돌배, 돌 포도 등의 이름을 붙인 나무는 아무 곳이나 뿌리를 내리고 잘도 큽니다.
이처럼 돌배, 돌 무화과나무, 아가사과, 개 복숭아, 돌 포도나무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접붙이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뿌리는 땅에 잘 뻗어서 잘 자라니까 접붙인 좋은 나무를 잘 자랄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대목용으로 과일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그리고 2~3년 정도 아주 튼튼하게 자라면 접목의 대목으로 쓰고 접수는 열매가 잘 열리는 나무를 골라 접붙이기를 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원예 기술이 발달하여 접붙이기나 옮겨 심거나 거의 실패하는 일이 없습니다. 사실 모든 식물들은 꺾꽂이가 되는데 꺾꽂이가 되지 않으면 ‘휘묻이\\’를 합니다. 집에서 잘 키우는 ‘은반 산세베리아’는 은반일 때 가장 귀품이 있는 식물입니다. 이를 ‘천년란’(千年蘭)이라고도 하는데 꽃말이 ‘관용’(寬容)이어서 더 좋은 식물입니다. 선인장류여서 물을 조금주어도 잘 크기 때문에 가정에서 많이 심습니다. 그 것도 꺾꽂이를 하면 은반이 나오지 않고 청반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점점 퇴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원예전문가는 그 퇴화의 원인을 차단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돌 무화과나무를 바다에 심어지게 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다. 돌 무화과나무는 가지가 무성하고, 뿌리가 깊어서 쉽게 뽑아지지도 않지만 정성을 들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바보나 할 일입니다. 누가 열매도 열리지 않는 돌 무화과나무를 바다에까지 끌고 가 심겠습니까? 정말 나무를 잘 가꾸길 원한다면 좋은 땅에 심을 것이고, 심기 쉬운 곳에다가 심을 것입니다. 어떤 나무든지 바다에 심기는 어려울 것이고 잘 심어 놓아도 파도가 금방 휩쓸어 갈 것이고, 짠물이라서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금방 죽을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바다에 심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돌 무화과나무이니 더 그럴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아무 쓸 데도 없는 짓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돌 무화과나무를 바다에 어렵지 않게 심을 수 있고, 파도가 심하게 쳐도 잘 살 것이고, 짠물이 나무를 절여서 금방 죽을 것 같은데도 살려주시고, 열매를 맺는 좋은 무화과나무로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심어주신 씨앗은 아주 좋은 것입니다. 절대로 퇴화되거나 질이 떨어지는 열매를 맺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씨앗을 받은 우리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돌 무화과나무가 되거나 개 복숭아처럼 질이 아주 현저하게 떨어진 과일나무가 되었습니다. 희망이나 가치도 없이 잘려져 불에 태워져야 마땅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무성하게 가지는 번창하고, 몸통은 굵어지고, 뿌리는 세상의 온갖 것에 내리면서 나름대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거름기나 영양을 빨아들이는 이 못난 것의 체질을 개선하고, 바다에 심을 수 있고, 파도를 이기고, 뿌리가 뽑히지 않고, 완전히 다른 생명으로 살릴 수 있게 하는 것은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심어주신 씨앗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돌 것’이 된 우리를 과감하게 몸통을 잘라 버리시고, 당신이 접수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도록 접붙이기를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에 심어 체질을 완전히 개선하고 부정과 불의한 것을 모두 없애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전제조건이 그렇게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주님을 온전히 믿는 것이며, 허접 쓰레기 같은 것을 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니며, 쓸데없는 짓이 아니니 좌절하지 말고 죽기를 각오하고 주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이 주인에게 충성하고 종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겸손한 것처럼 이 몸뚱이는 주님의 것이오니 자르고, 불태우고, 소금에 절여서라도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간청해야 하겠습니다. 그게 나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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