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23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루카16,10-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간편하고 가장 관리하기 쉽다고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관리하기 어렵고 힘든 것도 또한 자신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하여 너무 힘들어합니다. 자신들의 일이 너무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수준이나 능력이나 지식으로 보아서 아무도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시시한 일만을 주고 있다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하여 아주 오랫 동안 생각하고 반성하고 새롭게 결심하고 사는 사람보다 지금까지 자신이 겪었던 것을 최고로 생각하고 변화를 주지 않으려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간직한 것이 가장 큰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놓친 것이 가장 큰 것이었다고 아쉬워하는 것이 우리들의 보통 생각들인 것 같습니다. 낚시꾼과 같이 말입니다. 또한 어떤 일을 실수하였을 때에 자신의 무능에 대하여 창피하고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고, 자신을 탓하여 비관하고, 죽고 싶을 만큼 자신이 미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자기 관리가 그렇게 어려운지는 바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음식점에 가서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면 지루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습관처럼 주변을 둘러봅니다. 제일 많이 눈에 띄는 글은 ‘마음을 다스리는 글’입니다. 그리고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나 ‘길상여의’(吉祥如意)라는 글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주님께서는 첫머리부터 끝까지 모두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하여 모든 종교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선(禪)에서도 중심 사상이 그 것입니다.

 

   우리의 실제적인 삶에서 보면 아무리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교리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여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언제나 말썽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욕정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가서 폭발하기도 하고, 순간적인 충동과 순간적인 욕심에 눈이 흐려지고, 사고를 치며, 폭력이 튀어나오고, 범죄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 모든 마음의 갈등은 내 욕망과 내 삶이 주님의 가르치심과 아주 큰 괴리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예수님 때문에 괴롭고 힘들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몰랐다면 지금쯤 아주 편하게 살 텐데 이렇게 갈등과 고민으로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결국 크리스천에게는 문제의 핵심이 바로 복음이고, 예수님이라고 푸념하기도 합니다.

 

  그런 억지소리를 들어가면서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내가 직면한 모든 것이 결국은 내 모든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슴에 터질듯 한 답답함도 내 욕심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가정의 화목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모든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나를 피해서 다른 사람에게만 이뤄지고, 내 뜻대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님의 가르치심을 내가 듣고, 배우고, 알면서도 내 삶에 옮길 줄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말씀이고, 내 생활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고, 주님의 가르치심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삶이 완전히 다르고, 생각과 행동이 또한 다르기 때문입니다.

 

  논어의 이인편에 ‘군자유어의, 소인유어이’(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라는 뜻이지요. 사람이 이익에 밝지 못하면 잘못이지요. 이로움에 대해서도 밝아야 한답니다. 그것이 경제원칙이고 경영의 기본입니다. 이익을 거두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답니다. 그러나 이익만 생각하고 살면 세상은 완전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세상이 되어서 완전히 피폐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익을 추구하되 의로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어려움이 있답니다. 공동선(共同善)은 의인이 추구하는 것이고, 크리스천이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공동선\’(共同善)이란 바로 <공동체의 의를 통해서 올바른 방법으로 이로움을 추구하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가치>입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다른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그 하느님을 이익이나 재물보다 우위에 두어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이루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고 이끄시는 길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안에서 발견한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섬기면, 바로 주님을 섬기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업에 성공하려면 동업자와 모든 종업원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고객을 감동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고객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아주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순간순간을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사람은 자신 안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그 하느님께서는 내 마음의 갈등을 없애주시고, 내 안의 보물을 발견하도록 성령으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삶이 정말 복음을 사는 삶일 것입니다. 가짜가 판치고, 사기꾼이 많은 돈을 긁어모으는 세상에서 정말 명품을 간직하는 사람은 복음의 삶을 사는 성실한 사람일 것입니다.

 


장자의 “내 안의 보물을 발견하는 법”을 옮겨 적습니다.

 

내 안의 보물을 발견하는 법

 

명검(名劍)을 가진 자는 그것을 상자에 넣어둔 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무엇일까?

내가 가진 재주일까? 내가 아끼는 물건일까?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일까?

누가 뭐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자신을 함부로 굴리지 않는 것,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고 계발하는 것, 그것이 모든 이들의 최우선 과제다.

 


인품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이 온갖 명품으로 몸을 치장한다고 해서 돋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내면의 명검을 가진 자, 인생에서 불굴의 신념을  획득한 자는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가 명품을 입었을 때, 명품이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명품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라. 이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를 함부로 대한다.

이것은 남을 함부로 대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일이다.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그가 바로 진정한 보물을 간직한 사람이다.


 2007-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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