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2일 연중 제16주일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루카10,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행복하게도 많은 형제 자매들 속에서 살았습니다. 집안의 장남이다 보니 큰일을 정말 많이도 치러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은 내 몫이었습니다.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이나, 결혼시키는 일이나, 크고 작은 일들이 전부 내 몫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는 하느님께 무지하게 원망하면서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많은 일을 어떻게 하였는지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숱하게 울고,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아내가 헌신적으로 도와주었고, 십중팔구는 아내가 한 일입니다. 가난한 집의 맏며느리로 들어와서 정말 헌신적으로 일하고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가르쳤고, 아이들도 전적으로 맡아서 다 키웠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이 계획만 세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슨 행사가 있을 때에는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그 일을 하려고 하였고, 그 것이 몸에 배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도 언제나 오차가 있게 마련입니다. 지금은 거의 반 이상이 내 계획에 오차가 생깁니다. 세월도 많이 흘렀고, 사람들의 계획성이나 민첩성이 많이 빨라진 반면 나는 옛날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내가 일을 벌이면 아내는 전부 수습하고 완전하게 결말을 맺었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많이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하고, 모든 공은 전부 내가 받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면서도 괴로움에 숱하게 울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아파하고 하느님께 매달린 그 숱한 나날을 나는 모르세하고 살았습니다. 손님을 접대하거나 아이들의 학비를 대거나 살림을 하거나 작은 몸으로 부서져라 일하던 아내가 이제는 늙어서 기운이 없어졌습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처럼 일에 파묻혀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턱을 고이고 그분을 응시하며, 그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그 시간을 전부 빼앗긴 인생이었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각각 그 몫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지금은 주님의 발치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니 이제 주님을 접대할 시간에는 접시도 나르고, 음식도 서빙하고, 손님들이 다 간 다음에는 도맡아서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정리정돈도 할 것입니다. 조금도 공치사도 하지 않고, 언니 마르타가 애써서 봉사했으니 쉬라고 언니의 팔다리도 주물러 주고, 어깨도 주물러 주면서 모든 일을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은 그렇게 몰두했으니 주님의 말씀대로 잘 살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그렇게 받았으니 그 사랑을 실천하는데 앞장설 것입니다. 주님께서 멍에를 메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니 멍에를 아주 잘 메고 살 것입니다. 만약 마리아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칭찬해 주시지도 않을 것이고, 주님의 사랑을 배반한 것이 된답니다. 마르타처럼 좋지 못한 그 몫을 다한 아내도 주님께서 그렇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나도 이제 철이 들었으니 그 모든 것을 마음에 새기고 기도합니다. 이현주 시인의 <뿌리가 나무에게>라는 시가 오늘따라 가슴에 가득히 담겨옵니다.

 


     뿌리가 나무에게   …     이현주

 


 네가 여린 싹으로 터서 땅 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 먼 손 뻗어

 어둠을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날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더욱 아래로 막힌 어두움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와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바늘 끝 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 날 네가 사나운 비바람을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일 뿐이었으나

 나는 믿었다.


 내가 이 어둠을 온몸으로 부둥켜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나는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잎 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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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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