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7일 연중 제 11주일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루카7,36-8,3<또는 7,36-50>

<필자의 묵상중심으로 복음 일부분 생략>

그때에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꼼꼼히 보면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와 부자 시몬 또 이에 초대한 다른 바리사이 사람들과 내빈들, 그리고 불청객이며 죄인인 여인이 있습니다. 문학에서는 등장인물의 분석을 통해서 그날 사건을 분석할 수 있고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합니다. 그런데 전혀 이질적인 집단의 구성을 통해서 오늘 사건의 전모를 등장인물만으로 파악할 수도 없고 그림을 그릴 수도 없습니다.

 

오늘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감히 분석할 수 없지만 예수님을 초대한 시몬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는 아주 부자였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자기의 집에 사람들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고, 초대하였기 때문에 참으로 훌륭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자기의 재산이나 명예를 과시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초대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그도 역시 바리사이인지라 예수님을 떠보기 위해서 아니면 예수님을 골탕 먹이려고 그랬는지 증인으로 바리사이들과 내빈들을 같이 초대하고, 죄인으로 소문이 좋지 않은 여인을 그 집에 들이고, 귀빈석에 앉아 계신 주님의 뒤편에 그 죄인인 여인을 세워 놓은 것입니다.

 

  오늘 바리사이들은 의인들의 식탁에 죄인이 끼어들었다고 생각할 것이고, 성경을 대하고 있는 우리들은 예수님과 죄인들의 식탁에 용서를 청하는 죄인 하나가 끼어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받는 극적인 장면이 그림처럼 연상됩니다. 나는 오늘 좀 좋치 않은 버릇으로 죄를 용서받는 모습을 단계별로 나누어 생각해 봅니다.

 

  1. 예수님의 뒤쪽 발치에 서서 울고 있다. 시몬이 그 여인을 들였든 몰래 들어왔든, 죄인임을 고백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감히 예수님의 앞으로 나설 수 없는 여인은 지은 죄에 대해서 크게 뉘우치고 슬피 울고 있습니다. 식탁의 분위기는 완전히 깨어진 상태입니다. 지금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처신을 보려고 일부러 그 모습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예수님을 공경한다면 은근히 밖으로 내쫓으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지은 죄를 뉘우치며 슬피 우는 여인이 부럽습니다. 죄를 짓고도 울지 않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2.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았다. 뒤에서 울고 있는 여인을 보려고 예수님께서 돌아앉으셨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그분 앞에 엎드려 죄를 뉘우치며 대성통곡하며 눈물을 쏟아 주님의 발을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립니다. 집 주인이 발 닦을 물을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그 여인은 눈물과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 드립니다.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 드린다는 것은 자신의 전부를 다 바쳐서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발에 묻은 먼지를 자신의 머리카락에 묻힘으로써 자신이 더러워지더라도 주님을 깨끗이 해드리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 지극한 것입니다.


  3. 그 발에 입을 맞추고, 신체 부위에서 가장 더럽고 세균이 많은 곳이 발이라고 합니다. 그 발을 닦아드리고 입을 맞추는 것은 바로 지극한 사랑을 간절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지극한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나는 아직도 죄를 용서해달라고 발을 머리카락으로 닦고, 입 맞춘 사람은 내 생애에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매일 죄를 짓고 살고 있으면서도 일년에 꼭 한번 성금요일에 십자가의 예수님께 친구할 뿐입니다. 그것도 아주 형식적으로 예절에 참례해서 입 맞출 뿐이랍니다.

 

  4. 향유를 부어 발랐다. 그러자 냄새나는 발이 향기로워졌습니다. 결국 주님을 향기롭게 흠숭할 때 우리는 용서받을 수 있음을 새롭게 상기합니다. 주님을 향기롭게 하는 것이 바로 나를 향기롭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새깁니다.
 

  5. 예수님께서 목석이고, 냉혈한이라고 하더라도 죄를 용서해 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그분께서 어떻게 죄를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본시 500데나리온을 빚 진자나 50데나리온을 빚 진자도 빚을 갚을 능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적은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주님께서 탕감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조금도 용서받지도 못하고 죄인인 채 죽을 뿐입니다. 그런데 용서해주시는 주님께서는 간절히 용서를 청하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죄를 크게 뉘우치는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더 잘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을 다시 새겨주십니다. 오늘 복음을 대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 받는 과정을 생각해 봅니다.


  자비와 용서의 하느님, 저희가 저희의 죄를 도저히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당신께 교만하고 어리석게 살았나이다.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당신 밖에 아니 계시고, 저희가 진 빚을 탕감해 주실 분은 당신뿐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믿나이다. 또한 당신을 사랑하는 것에 비례하여 당신의 은총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겨우 깨닫고 있사오니, 저희를 용서하시고, 당신 사랑의 품으로 이끌어 주소서. 자비와 사랑의 주님!!!

 

-선교사랑방 야고보 아저씨-


2007-06-17


?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