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프랑스 작은 마을 “떼제“에서 스위스인 25살 로제 슈츠는 작은 공동체를 만듭니다. 교회의 일치와 화해를 위하여. 그리곤 침묵과 기도를 시작합니다. 마치 선승이 조용히 산문을 닫고 기도하듯이. 그 곳에 같은 생각을 하는 종교를 초월한 젊은이들이 모입니다. 그리곤 함께 기도하고 노동하고 또 침묵합니다. 초교파 수도회 ”떼제“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아래는 이 떼제의 기도, 노래입니다. 비록 종교적인 내용이지만 아래 몇 가지 글들을 옮겨왔듯이 종교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침묵의 깊이와 화해,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위한 헌신.
전 주일은 부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라는 고난과 희생이 없는 부활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아래 맨 위 트랙은 우리가 미사곡에서 자주 듣는 “아뉴스 데이 Agnus Dei" 중 ”Dona nobis pacem 평화를 주소서“입니다. 부활이지만, 아직 차가운 물속에 잠겨있을 많은 젊은이들, 또 수색에 참여했다가 사고를 당한 어부들, 그리고 반도체 공정에서 얻은 백혈병으로 숨진 이제 겨우 23세인 박지연”내가 니 별이다“님. 그 외 모든 삶의 고통 속에 숨진 많은 분들의 평안한 안식을 빕니다.
떼제 창시자인 로제 슈츠 수사와 교황 바오로 6세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던 ‘68세대’의 상상력도 개인주의와 패배주의의 물결에 유실되어가던 1974년 8월, 프랑스 작은 마을인 떼제에서 로제 슈츠수사는 “젊은이들의 공의회“를 열었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내적으로 성숙해진 젊은이들은 각자의 교회와 마을, 일터에서 정의와 평화의 일꾼으로 살기를 다짐하는 ‘지상에서의 신뢰의 순례’(a pilgrimage of trust on earth)를 시작했다. 해마다 수만 명이 참여하는 ”유럽모임“을 비롯해 각 대륙에서 열리는 떼제 모임에서 젊은이들은 기도와 생활을 함께 하며 화해와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떼제가 젊은이들의 중심에서 희망을 소생시켰을 때, 그들은 세계의 희망이 되었다.
“외국에서 큰 지진이나 테러, 재해로 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어도
그 다음날 교회에 가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아요.
텔레비전을 보고 이미 다 알고 있을 텐 데도...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나라, 우리 교회, 우리 성도만을 위해 기도합니다.
참 이상한 일이에요.”
떼제의 고요함은 세계로부터 퇴거한 은둔의 상태가 아니라, 세계의 고통에 더 귀 기울이기 위한 경청의 상태이다. 생명과 인간 존엄성을 파괴당하는 이웃을 위해 긴급하게 기도하려는 떼제의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뉴스’에 민감한 것이다. 떼제의 기도책은 ‘세계’다.
“공동체에 가장 큰 유혹은 ‘우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침묵은 기도의 시작이고, 기도는 도전과 모험의 시작입니다.”
기도의 시작이 침묵인 것은 나를 부르고 나에게 도전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다. 경청을 위한 침묵이다. 그래서 떼제의 기도는 소란하지 않다. 절규하듯 한(恨)을 풀기보다는 신의 말씀을 고요함 가운데 듣고 그 뜻을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기도가 도전이자 모험인 까닭은, 침묵을 통해 깨닫는 소명이 자신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떼제는 이 세상으로부터 달아나는 도피적 평정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안선재 수사는 떼제의 기도를 ‘현실적 신앙’이라고 표현한다. 기도는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선택해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교회 안으로가 아닌-모험의 출발점인 것이다.
“우리 신앙이 너무 종교적인 것이 될 때 복음적인 것은 사라져요.
교회 안의 신앙생활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떼제를 다녀간 뒤 떼제 이야기를 하지 말고,
여기에서 얻은 내적 힘으로 세계를 쇄신하라고 말해요.”
기도의 리듬을 탄다는 건 자기를 가두는 외톨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서 새로운 나로 옮겨가며 이웃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역동적 모험이었다.
| 2010-05-0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