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 못 먹는다잖여!!

by 안요한 posted Jan 2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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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못 먹는다잖여(서경애, ‘좋은생각\’ 중에서)

한창 은행 업무에 바쁜 날이었습니다. 한 할아버지께서
꾸깃꾸깃한 천 원짜리 지폐 서른 장과 계좌번호가 쓰인 종이를 내밀면서
내게 돈을 부쳐 달라고 하셨습니다.
종이를 보니 에티오피아 기아 아동에게 보내는 기금이었습니다.
얼핏 보기에 할아버지도 먹고 살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렸지요.

“이 돈으로 잡수시고 싶은 음식 사 드세요.
그곳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도와줄 거예요.”

“왜 그랴. 이것 보내 달라는데. 나는 밥 먹고 살아.
거기 아이들은 밥도 못 먹는다잖여.”

나는 부끄러워져서 할아버지께서 주신 돈 삼만 원을 원하는
계좌로 부쳐 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다음 달에도 천 원짜리 서른 장을 들고 은행에 오셨습니다.
그렇게 은행에서 할아버지를 만난 지 어느덧 삼 년.
늘 남루한 차림으로 오시는 할아버지께 여쭈었습니다.

“할아버지도 살기 팍팍하실 텐데 꼭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도우셔야 해요?”

“그럼. 나 언제 죽을지 몰라. 칠십 년 동안 이 세상에서 잘 살았는데,
고맙다는 인산는 하고 가야지. 그래서 그곳 애들한테 돈 보내는겨.”

달마다 은행에 들르시는 할아버지께서 안 보이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어디 아프신지,
이사를 가셨는지 얼마 전부터 은행에 오시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알게 됐습니다.
돈이 많이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걸 그냥 나누는 것이라고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은행에 오시던 할아버지가 그립습니다.


2008-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