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의 평화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의 인 끌레멘스 원장신부입니다. 우선 지난 성금요일 새벽에 일어난 수도원 화재에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관심과 기도로 함께 해주심에 이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을 비롯한 수도 공동체를 대표해서 머리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또한 여러분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수도원 화재와 현재 상황에 관해 우리 수도원을 사랑하시는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성금요일(4월6일) 새벽 1시15분경에 원인을 모르는 화재가 구관 3층 지붕 밑 옥상 창고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날은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를 마치고 수도 형제들이 1시간씩 성당 수난 감실에서 성체조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1시30분경 전 안드레아 부원장 수사님이 기도를 마치고 성당에서 나오다가 성당으로 들어가는 복도에서 구관 지붕 뒤에서 불꽃이 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부원장 수사님은 곧바로 밖으로 나가 수도원 건너편에 있는 순심고등학교에서 불이 난 줄 알고 학교 쪽을 바라보니 불이 전혀 없고, 그래서 수도원 지붕을 보니 거기서 불이 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곧바로 안으로 들어와서 119에 화재 신고를 하고, 성당으로 뛰어 들어가 기도하고 있는 형제들에게 화재 소식을 전하고 그 형제들이 자고 있는 형제들을 깨우고 소화기를 들고 3층 옥상으로 통하는 문에 가보니 이미 불길은 밖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수도원에 있는 모든 소화기와 소화전을 동원하여 불을 진압하려고 노력해도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불이 거세서 불은 점차 번져나갔습니다. 약 20여분 후에 소방관들이 수도원에 도착해서 불을 끄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수도원 구관 건물은 1958년에 지은 것으로 겉만 브로크로 되어 있지 내부는 모두 목재로 되어 있고 전기 시설도 많이 노후되어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불이 한번 붙으니 불은 옥상에서 3층 방으로 옮겨 붙었고, 3층에서 2층을 거쳐 1층까지 내려갔습니다.
자고 있던 형제들은 급히 일어나서 함께 불을 끄려고 온갖 힘을 다 기울였지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불은 구관 건물 전체를 집어삼켰고 옥상 창고에서 수도원 중간 부분 옥상을 거쳐 신관 옥상으로 번져갔습니다. 특히 중간 부분 옥상과 신관 건물 옥상은 지금까지 수집한 중요한 유품과 유물들이 보관되어 오던 창고이었기 때문에 이번 화재로 인해 모든 자료와 유품과 유물들이 완전히 전소되었습니다.
다행히 소방관들과 형제들의 노력으로 불은 성당으로는 번지지 않았고, 또 신관 건물은 1984년에 지은 콘크리트 건물이기 때문에 옥상만 불에 타서 지붕과 유물들이 전소되었지만 불은 형제들이 사는 3층 방으로는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또 형제들은 불이 점차 번지자 중요한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방을 비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지난 번에 한국으로 반환한 겸재 정선의 화첩은 3층 문서실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원장 신부인 제가 형제들과 소방관들을 데리고 문서고로 가서, 문서고 철문을 헤머로 부수고, 저와 비서 신부가 문서고 안으로 들어가서 화첩을 제일 먼저 안전하게 다른 곳으로 피신시켰습니다.
그후 수도 형제들은 문서고의 서류들을 안전한 신관 1층으로 옮겼다가 그곳도 위험해서 청지원자들이 사는 마오로관으로 안전하게 옮겼습니다.
구관 2층 중간에 있는 아빠스님 방을 구하려고도 힘을 다 썼습니다. 아빠스님 방은 다행히 콘크리트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불이 접근해도 잘 견디었습니다. 비서 신부와 김 마리오 수사님이 소방관들과 함께 아빠스님 직무실 베란다를 통해 사다리로 올라가서 소방 호수로 물을 뿌리면서 2층 복도를 통해 불이 접근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저도 사다리를 통해 직무실로 들어가서 함께 불을 저지했습니다. 결국 직무실 옆 아빠스님 침방은 전소했지만 중요한 문서들이 있는 아빠스님 직무실은 엉망이었지만 전소되는 것을 구사일생으로 막았습니다.
우리 수도 형제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수도원 건물 구조를 잘 모르는 소방관들을 인도하여 유독가스와 불이 나는 곳을 헤치고 다니면서 불을 끄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뛰다보니 점차 날이 밝아왔습니다.
떠오는 해를 보니 제 마음이 참으로 찹찹했습니다. 날이 밝으니 대부분의 건물을 완전히 타고 계속 잔불이 나오고 있었고 특히 신관 창고 쪽에서는 계속 불길이 일고 있었습니다. 날이 완전히 밝고 나니 그때서야 소방 헬기가 수도원 상공을 선회하면서 불을 끄려고 했지만 이미 큰 불은 다 꺼졌기에 그냥 돌아가버렸습니다. 잔불은 금요일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었고 형제들과 소방관들은 뼈대만 남은 건물을 계속 주의깊에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아빠스님과 저를 비롯한 구관이 사는 형제들은 대부분 아무 것도 못 갖고 몸만 빠져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컴퓨터는 들고 나왔지만, 수련장 신부님은 지금까지 공부한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피해 사항을 전체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관 1층(당가실, 비서실, 서무실, 외원 사무실), 2층(아빠스, 원장 신부를 비롯한 형제들 침실), 3층(형제들 침실)은 1층의 몇 개 방만 빼놓고 완전히 전소되었고, 신관과 연결하는 중간 부분의 옥상과 지붕, 신관 옥상과 지붕도 완전히 불에 타서 재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중간 부분 1층에 있는 참사회의실(옛 수도원 성당)의 지붕이 완전히 전소되었습니다.
참사회의실 밑 지하에 있는 도서실은 불 피해는 면했지만 소방차에서 쏜 엄청난 물 때문에 천장에서 아직도 물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임시적으로 물 피해를 막고자 서고 위에 천막을 덮어 놓았습니다. 중간 부분 1층과 2층과 3층의 복도 벽은 그으름으로 검게 변했습니다. 중간 부분 3층에 있는 수련자 공동 침실과 역사 자료실과 문서고는 쓰지 못하고, 중간 부분 2층의 수련자 공부방과 휴게실, 유기서원실, 묵상실도 현재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관 건물도 소방차에서 쏜 물로 인해 방과 복도에 물이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신관도 지붕과 옥상 창고가 손실되었기 때문에 급히 복구를 해야 할 형편입니다.
어제 화요일(4월9일) 국립과학수사대에서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해 조사를 해갔습니다. 아직 완전한 결과는 안 나왔지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전기로 인한 화재일 가능성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또 보험 회사에서도 조사를 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사실 우리 수도원 본관 건물 전체의 보험 금액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구관과 중간 건물과 신관 지붕을 새로 짓기 위해서는 보험료로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현재 수도 형제 모두는 힘을 다해 복구를 하고 있지만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서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당장 기거할 공간도 턱없이 부족해서 몇 노인 형제들은 우리 수도원이 운영하고 있는 무의탁 양로시설인 ‘분도 노인마을’로 내일 떠날 예정입니다.
파스카 성삼일을 이렇게 보내면서 우리 공동체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전례로 기념하고 실제로 체험했습니다. 이번 화재로 모든 것을 잃은 어떤 형제는 욥의 기도를 계속 읊었다고 합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욥 1,21).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수도 형제들이 한 사람도 다치지 않도록 지켜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수도원을 사랑하시는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한번 여러분의 관심과 기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이 시련을 통해 더욱 하느님 뜻에 맞는 수도 공동체로 거듭 태어나게 하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형제자매님들께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도움을 주실 분들은 아래 계좌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하느님을 찾는 이들이 사는 수도원이 다시 태어나는 작은 밑거름이 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수도원 복구 및 건축 헌금 계좌번호
국민은행 608037-04-001214 대구은행 190-10-003160 농협 769-01-163553 하나은행 510-910005-90805 우리은행 1005-501-150850 중소기업은행 309-000164-01-043 예금주: 재)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
2007-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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